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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함께여행

2008-1월 유럽여행(10.비운의 도시 폼페이(Pompeii 이탈리아)

 

10.비운의 도시 폼페이(Pompeii 이탈리아)

 
화산폭발로 인해 기둥만 남아있는 정원의 모습
 

 

10. 화산폭발로 잊혀졌던 폼페이(Pompeii)

 

서기 79년 8월 번영하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전체와 2,000여명의 주민이 함께 화산재에 파묻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비운의 도시이다. 베수비오는 26일 폼페이가 완전히 화산속에 덮여버리는 폭발 이전에 몇차례 경고를 했었지만 폼페이 사람들은 그것을 듣지 않았고, 한 순간에 손써볼 겨를도 없이 폼페이 사람들을 고대 이집트에서 볼 수 있는 미라의 형상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베수비오 화산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폼페이를 삼켜버렸을 때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어떤 도시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시설로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리조트 도시였고 농업, 상업도 발달해 있었다.


 

신전의 뻬대만 남아 있는 풍경
폼페이의 도로
당시 화산재 속에 화석이 된사람 띠를 둘러고 있는 사람은 노예라고한다.
연인과 안고 죽은화석, 개와 함께 죽은 사람, 목욕하다 죽은 사람
화산재가 인체를 둘러싸면 사람은 액체로 녹아 버리고 약간의 뼈만 남는다고 한다,
그녹아버린 공간에 가느다란 구멍을 내고 석고를 부어 다시 당신 죽은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진 화석이다.

 

폼페이로 올라가는 입구

폼페이의 카페
당시사람들은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고 모두 카페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특히 노예들은 밥을 해먹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돈을 벌어서 사서 먹었다고 한다.



당시 개인주택이었던 베티의 집정원에서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조심스러운 발굴 작업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로 당시의 폼페이인들의 문화와 예술, 건축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 폼페이가 로마제국으로 편입되었을 때 로마인들은 폼페이의 특성에 맞게 개조했다. 자갈로 포장된 도로에 하수로가 있었기 때문에 보행자 도로를 조금 높게 올렸고, 포룸과 원형극장에는 보행자들을 위한 특별 구역을 지정해 교통소통을 원할하게 통제했다. 그리고 폼페이는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9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폼페이 시로 들어가는 관문 근처에는 여관과 마굿과, 병원이 이었고, 시내 중심 거리에는 선술집과 현재의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역활을 했던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카페들은 로마인들이 공중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친 후 간단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폼페이 유적 발굴을 통해 드러난 하수시설, 목욕탕, 시장, 극장, 원형 경기장, 음식점 등 각종 시설은 2000년이라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현대의 그것과 비교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260가지의 자연 대리석 색이 만들어낸 작품같은 파괴된집의 벽앞에서 더이상의 색도

더이상의 작품도 인간이 만들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다

  BC 62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시민들이 힘을 합쳐 주택과 사원들을 재건해 겨우 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BC 79년 신의 분노라고는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베스비오 화산 폭발로 고스란히 화산재 속에 묻히고 말았다. 강진을 동반한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분철한 화산재가 무려 1m가까이나 쌓였었고, 나폴리의 하늘을 검게 뒤덮었다. 교외로 도망치는 사람, 집안에서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피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내린 비로 인해 분출한 화산재와 용암이 응결

 

하면서 거리 전체가 마치 찌는 솥과 같은 형상이 되면서 도시전체가 그대로 매몰되었던 것이다. 그 후 잔디와 덩굴식물들이 자라 그 자리를 덮게 되면서 폼페이란 도시라는 이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1500년 동안 역사의 저편에 사라져 있었다.


목욕탕내부를 장식한 대리석 모자이크 너무나 정교하고 야광돌 까지 이용한 그들은
 이미 과학을 뛰어넘고 세기를 뛰어넘은 신의 사람들이었다.

개인주택의 칸칸의 집중한집의 벽에 기대서서 나는 당시의 아비규환의 울음소리와 현재의

아름다움을 공존하면서 애매한 감정들이 북받쳤다.


원형으로된 노천 목욕탕천정


 2000여년전에 폼페이 사창가에 그려진 벽화

잊지못할 폼페이의 추억을 간직한채 소렌토로로 가기위해 폼페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룸메이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