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어원
첫 번째 주제: 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이란 무엇일까요? 참 어려운 말입니다. "미술이라는 것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뜻을 의미하고 미술이란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같이 어찌보면 많이 사용하는 말 이면서도 실재로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미술활동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고찰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먼저 미술이 생기게 된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에 그림의 가장 오래된 흔적은 <손바닥 각인>입니다. 외부에 투영된 신체의 흔적. 즉 이미지라는 사실이 미술의 기원에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이것은 자신의 흔적을 외부에 남겨 놓으려는 본능적인 충동이 예술 탄생의 가장 원초적인 계기의 하나가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손바닥을 각인 하면서 생기는 이미지로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며 이 이미지의 출현과 함께 미술의 역사는 시작된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테두리가 지워진 형태는 그 안에 윤곽선을 내재하고 그것이 회화 예술의 첫 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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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포착하여 정복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다는 것이 회화행위의 기원이며, 이것은 선사시대 동굴벽화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아놀드 하우저는 이 구석기 예술이 생활의 방편으로서의 미술이라고 말합니다. 미술이 마술 내지 주술의 수단으로서 철두철미하게 실용적이고 순전히 경제적인 목표와 직결된 기능을 했다는 겁니다. 이 때의 그림은 대상의 재현이자대상 그 자체이며 소망의 표현이자 소망의 성취였습니다.
즉 구석기인들은 그림을 통해 사물을 지배하는 힘을 얻는다고 믿었는데 즉 그림은 마술과 같은 것이죠. 그러나 이때의 마술은 절대로 상징적인 대용행위가 아니라 '현실적' '직접적' '실용적' 행동이었습니다. 동굴벽화에 묘사된 짐승들은 창이나 화살에 맞아있거나 그 옆에는 동물로 변장한 사람들이 의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현실적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술의 세계와 현실세계의 구분같은 것이 있을리 없구요.
이렇듯 그 당시 인류가 원하던 바를 간절히 기원하며 본능적으로 표현한 것이 그림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 당시의 아름다움(간절히 원하던바)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 잠시 우리는 미술(美術)의 미(美)자를 波子 해보겠습니다. 美자는 羊자와 大자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한마디로 사냥으로 연명하고 짐승을 잡지 못하면 굶어야 했던 그 당시의 간절히 원하던 주식인 '커다란 양'을 말합니다. 지금의 우리가 길가의 커다란 양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리 없지만 그 당시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절대절명의 대상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 당시의美는 생존과 연관된 풍부한 음식인 큰 양이었으며, 그 것을 표현한 기술적 행위가 바로 術인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미술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것입니다.
지금의 미술이라는 말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개념이지요. 그럼 내친 김에 아름다움(美) 이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깊게 살펴보도록 하지요. 물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큰 양도 美의 의미 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흘러, 인류는 의식주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서 인류는 음식과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정신적인 갈망을 하기에 이릅니다.
우리가 미를 영역하면 뷰티라고 하는데 이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벨루스(bellus)에서 온 것입니다. 이 벨루스라는 말에는 "좋은 것", "착한 것", "선한 것" 등을 총칭하는 말로, 소크라테스의 미선 합일 사상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미선 합일 사상이라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목적에 적합한 모든 것은 그 목적에 관해서 선이며 동시에 미이다."라는 유명한 말에 나타나 있듯이 미라는 감정은 선한 것이기에 우리에게 쾌감을 준다는 말입니다.
또한 동양에서도 공자가 미를 가치의 최상의 범주로 보면서, 선과 미는 나누어 질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공자는 두 개의 교향곡을 두고 다음과 같이 비유했습니다. "무는 음악적 양식미에 있어서는 극치를 이루었으나 선함이 더불어 극치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최고의 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말은 결국 윤리적 선과 결부되어질 때라야만이 미는 참다운 미가 된다는 것으로 서양의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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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움의 개념은 시대가 바뀌면서
변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미의 개념을 분분하게 연구하고 있지요! 한마디로 미술의 미(美)자 마저도
뭐라고 확정지을 만한 개념을 확정짓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미인의 개념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선사시대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항아리형의 몸체>,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밀로의 비너스<관능을 추구한 팔등신의
미인>, 동양의 양귀비<달덩이 같이 둥근 얼굴형>등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고 현재에 있어서는 아름다움은 쓰레기
통에서도 찾고, 화장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에 관한 개념에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術자의 개념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름다움이 사건이나 사물과 같은 대상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자신에 있는가?"
이렇듯 미라는 말은 개인차와 함께 다소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것이 미술일까요? 아니죠!! 이것이 뭔가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질 때, 이것이 바로 미술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뭔가
구체적으로 보여지도록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술(術)의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술이라는 개념을 간략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부터 이 술이라는 개념은 "쟁이"라는 말과 같이 단순 노동(모방을 위한)의 개념으로 보고 천대시 해왔던게 사실입니다. 이것은 (정신의
산물이 아닌)단순히 "미술이란 대상을 보고 똑같이 그리는 것이다." 는 자연을 모방하는 기술적 측면 만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주지하였다시피 미술은 단순한 대상의 모방이 아닌, 아름다움을 나름대로 추구하며(선과 진리와도 연관된) 대상의 껍데기를 모방하는게 아닌,
대상의 궁극적인 선과 본체를 표현 한다고 하는 좀 더 거시적 안목으로 보면, 이러한 쟁이의 개념은 틀린 것이 되며 자연의 원상을 탐구하여
재해석, 재창조한다는 정신적 의미가 더 강하게 드러나게되는 것입니다.